1920년대 경성에 대한 도시계획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래 1934년 6월 20일, 조선총독부는 “조선시가지계획령”(총독부령 제18호)을 발포하고, 경성에 대한 도시계획에 착수하였다. 도시계획의 주된 내용은 도심부의 도로를 개수하고, 시역(市域)을 확장하며, 확장된 시역에 대해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지도를 보면 경복궁을 중심으로 남서쪽과 북동쪽으로 도시가 확장되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도로가 개설되고 행정구역이 개편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경성 시구개정 예정계획 노선도
경성 시구개정 예정계획 노선도, 1912년, 77×107cm
이 지도는 1912년 12월 6일 조선총독부 토목국의 ‘경성부 시구(市區) 개수(改修) 예정 계획도 노선’ (조선총독부 고시 제78호)에 따라 “경성도서관”에서 도면으로 발행한 것이다. 지도 안에는 도로, 성벽, 산, 하천, 철도, 전차, 제방, 행정경계 등이 표시되어 있고, 그 위에 개수(改修)에 착수한 곳은 굵은 붉은 선으로, 개수 예정 계획지역은 붉은색 두 줄 실선으로 표시하고 있다. 큰 도로를 개설하여 구역을 나누고 구역들을 새로운 행정구역으로 개편해 나갔던 일제의 도시계획을 살펴 볼 수 있다.
청진부 도시계획 예정 지적도
청진부 도시계획 예정 지적도, 1935년, 89×73cm
청진(淸津)은 함경북도 중동부에 있는 항구 도시로, 1913년 청진부로 승격된 이래 날로 확장 및 성장하였다. 1930년대에 들어서며 광산개발 및 제철, 방직, 기계, 통조림 등 각종 공장이 건설되어 중공업 도시로 성장하였고, 항만시설도 계속 확장되었다. 이 지도는 1935년 제작된 것으로 발전하는 청진부의 모습을 상세히 담고 있다. 도심지의 지적도 위에 철도 및 도로개설 등에 대한 정보가 아주 상세하다. 그러나 이러한 도시계획은 일제(日帝)의 조선 수탈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최신 대한민국종합지도
최신 대한민국종합지도(국토종합개발계획도)
1976년 12월 ‘대한측지기술공단’ 출판부에서 제작한 ‘최신 대한민국종합지도’이다. 내용을 보면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은 1972년부터 1981년까지 실시되었으며, 국토 이용의 효율화, 사회 간접자본의 확충, 자원개발과 자원보전, 생활 환경 개선을 목표로 추진되었다. 전국을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의 4대강 유역으로 구분하여 개발하였고, 국가적 성장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 근현대 발전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1976년, 79×109cm
충북 진천 서암면 지적도
융희 4년 1월 9일에 측량한 1/1,200 축척의 충청북도 진천군 서암면 태락동 탁지부 (度支部) 소관 국유지 원도(原圖)이다. 태락동의 주민들의 논과 밭, 산 사이에 위치해 있는 국가 소유의 3필지 논에 대한 지적도로 좌측 상단에는 방위표도 표시되어 있다. 당시 측량 기수(技手)는 백종인, 주사(主事)는 구보전온(久保田穩)으로 일본인 측량기술자가 양전(量田)에 참여 했음을 알게 해주는 지적도이다.
대한제국 : 1910년경, 48×60 cm
충북 보은 탄부면 지적도
일제 강점기에 제작된 지적도로, 충청북도 보은군 탄부면 고승리 일대를 측량하여 그 성과를 토대로 작성되었다. 축척은 1/1,200이며, 임야 하천 논 밭 도로 개울 집터 등을 정밀히 측량하여 작성되었다. 지번은 1번부터 시작하여 455번까지 이어지며, 23장의 도면에 나누어 토지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이렇게 작성된 지적도를 통해 일제는 토지를 수탈하고 세금을 부과하는 등 우리민족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료로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 : 1910년경, 48×40 cm
전남 순천 주암면 지적도
일제 강점기 만들어진 전라남도 순천군 주암면 대구리 지적도이다. 축척은 1/1,200이며 대구리 마을에 있는 논과 밭 개울 도로 임야 대지 등의 위치와 면적 등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지번은 1번부터 505번 까지이며 15장의 지적도에 수록되어 있다. 이렇게 작성된 지적도를 통해 일제는 토지를 수탈하고 세금을 부과하는 등 우리민족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료로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 : 1910년대, 50×39 cm
충남 연기 서면 지적도
충남 연기군 서면 쌍류리 마을의 지적도이다. 축척은 1/1,200이며, 마을 안에 있는 논과 밭, 하천, 임야, 대지 등의 위치와 면적 등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1910년부터 시작된 토지조사사업은 1912년부터 본격적으로 한반도 전역의 토지를 조사하였고, 이렇게 작성된 지적도를 통해 일제는 토지를 수탈하고 세금을 부과하는 등 우리민족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료로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 : 1910년대, 51×38 cm
전북 임실 관촌면 지적도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 덕천리 마을의 지적도이다. 축척은 1/1,200이며, 마을 안에 있는 논과 밭, 하천, 임야, 대지 등의 위치와 면적 등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지번은 1번부터 777번까지 이며, 31장의 지적도에 수록되어 있다. 이처럼 토지의 소유권을 정하고, 경계를 정하며 가격을 산정했던 일제는 이로써 식민통치의 기초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 1910년대, 52×42 cm
경남 함안 가야면 지적도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면 묘사리의 지적도이다. 축척은 1/1,200이며 산과 논 밭 개울 도로 등에 대한 상세한 토지정보가 들어 있다. 이렇게 작성된 지적도를 통해 일제는 토지를 수탈하고 세금을 부과하는 등 우리민족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료로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 : 1910년대, 52×42 cm
경남 함안 가야면 등사도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면 묘사리 등사도이다. 등사도(謄寫圖)는 원본 지적도를 필사하 여 베낀 지적도로 논과 밭, 도로와 개울 등의 위치와 지번을 확인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등사도 뒷면에는 ‘지위(地位) 등급별 조사(調査) 임대(賃貸) 가격 등급표’가 붙어 있는데, 논은 얼마 밭은 얼마 대지는 얼마 잡종지는 얼마 등 임대가격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토지 소유자가 면적을 측정하는 것 보다는 임대인(소작농)에게 사용료를 거두기 위해 참고했던 자료인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 1920년대, 105×78 cm
조선지질도(완도)
일제강점기(1929년) 조선 전역의 지질을 조사하여 지표(地表)에 대한 정보를 활용하는 한편, 지하자원 등을 착취하여 하였고, 그 조사 결과를 보고서로 간행하였는데 그 중 12번째 도서이다. 전라남도 완도 노화도 청산도 소안도 보길도의 암석의 종류와 토양의 성질, 지형과 지질구조 등에 대한 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축척은 1/5만이며 작은 섬들까지도 지상에서 지하까지 암석의 분포에 대한 정보와 사진자료를 수록하고 있다. 이러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자료 역시 일제가 우리민족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료로 사용되었다.